시어머님께서 몇 년 전부터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아프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때는 솔직히 제가 좀 힘들었습니다. 육아와 일에 지쳐 있던 시기였고, 매번 어디가 아프다고 하시니까 관심을 끌려고 하시는 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시어머님은 우울증 약을 드시고 계셨습니다. 그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어르신들의 우울증은 "슬프다"는 말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요.

노인 우울증은 몸의 언어로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우울증이라고 하면 눈물, 무기력, 깊은 슬픔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60세 이상에서 발생하는 노인 우울증(Geriatric Depression)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노인 우울증이란 노년기에 발생하는 기분장애로, 신체 증상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일반적인 우울증과 구분되는 특징을 보입니다.
제 시어머님도 그러셨습니다. "마음이 힘들다"는 말씀은 한 번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무릎이 아프다", "소화가 안 된다", "잠을 못 잔다"는 말씀을 반복하셨습니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도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소견만 나왔고, 그럴수록 시어머님은 더 불안해하셨습니다.
노인 우울증의 주요 신체 증상은 만성적인 통증 호소(두통, 관절통, 소화불량 등), 수면 패턴의 변화(불면증, 새벽 각성), 식욕 저하와 체중 감소, 화병 증상(가슴이 답답하고 치밀어 오르는 느낌) 등이 있습니다. 이런 증상들은 실제로 몸에서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에 본인도, 가족도 우울증이라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냥 "나이 들어서 그런가보다"라고 넘어가기 쉽습니다.
가족이 알아차리기 어려운 구조적 이유
저는 제 외할머니도 비슷한 증상을 보이셨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외할머니는 사람 만나는 걸 피하셨고, 집에만 계시려고 하셨습니다. 당시에는 그냥 성격이 그러신가 보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대인관계 기피 같은 행동적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노인 우울증을 가족이 놓치는 이유는 단순히 관심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구조적으로 발견하기 어려운 조건들이 있습니다. 첫째, 어르신 세대는 감정 표현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특히 남성 어르신들은 "힘들다"는 말을 약함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짜증이나 무관심으로 감정을 대신 표현합니다. 둘째, 노년기에는 만성질환이 흔하기 때문에 신체 증상과 우울증 증상이 겹쳐 보입니다. 고혈압, 당뇨, 관절염 같은 질환을 앓고 있다면 우울증으로 인한 신체화 증상과 구분이 더욱 어렵습니다. 셋째, 돌봄을 제공하는 가족도 지쳐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아이를 키우고, 일하고, 시부모님 병원 모시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벅찼습니다. 노인 우울증의 유병률은 여성이 남성보다 약 2배 높게 나타나는데, 이는 사회적 고립과 역할 상실이 여성 노인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가성치매와 진짜 치매를 구분해야 합니다
시어머님께서 손주 이름을 헷갈려 하시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혹시 치매가 아닐까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우울증 치료를 받으신 후에는 그런 일이 없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성치매(Pseudodementia)입니다.
가성치매란 우울증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인지 기능이 저하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실제 치매가 아니지만 기억력 감퇴, 집중력 저하, 판단력 둔화 같은 증상이 나타납니다. 쉽게 말해 우울한 감정 때문에 머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 구분 | 가성치매 | 진짜 치매 |
|---|---|---|
| 발병 양상 | 갑작스럽게 시작 | 점진적으로 진행 |
| 자각 여부 | 본인이 인식하고 불안해함 | 자신의 문제를 인식 못 함 |
| 연관성 | 우울증 악화 시 함께 심해짐 | 독립적으로 진행 |
| 회복 가능성 | 우울증 치료 시 호전 가능 | 비가역적 진행이 일반적 |
시어머님께서도 항우울제 복용과 함께 정기적인 상담 치료를 받으셨고, 몇 달 후부터는 예전의 밝은 모습을 되찾으셨습니다.
가족의 관심이 약만큼 중요합니다
노년이 되면 자녀들은 독립하고, 사회적 역할은 줄어들고, 본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줄어듭니다. "나는 이제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우울증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제 시어머님도 손주가 태어난 후 확실히 달라지셨습니다. 아이를 돌보고, 제가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서 본인의 역할을 다시 찾으신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아이들이 집에 오면 이것저것 챙겨주시려고 하십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가족의 관심과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낍니다.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들이 있습니다. 통화할 때 "오늘 뭐 하셨어요?" 보다 "요즘 기분은 어떠세요?"라고 물어보는 것, 주 1회 이상 함께 산책하거나 외출하는 것, 예전에 즐기시던 취미 활동을 다시 시작하도록 권하는 것. 이런 작은 실천들이 우울증 예방과 조기 발견에 도움이 됩니다.
만약 3주 이상 무기력과 신체 증상이 지속된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고려해야 합니다. "우울증 같아요"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요즘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병원에서 한 번 상담받아보는 건 어떠세요?"라고 부드럽게 제안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울증은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병이 아닙니다. 감기나 고혈압처럼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환이고,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충분히 나을 수 있습니다.
시어머님께서 우울증을 극복하신 모습을 보면서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나이가 든다고 우울한 게 당연한 건 아니라는 것. 감정도 치료가 필요한 영역이라는 것. 그리고 가족의 따뜻한 관심이 약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요. 저도 나중에 나이가 들면 취미를 유지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가고, 제 감정에 솔직해지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님의 몸 건강만큼이나 마음 건강도 자주 여쭤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