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평소 밤늦게 TV를 보는 편인데, 가족들이 잠들면 볼륨을 3~5 정도로 아주 낮게 틀어놓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TV를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아버지는 볼륨을 15~20까지 올려야 잘 들린다고 하시더라고요. 주방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리면 더 올라가는 건 덤이었습니다.
처음엔 농담처럼 넘겼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버지 나이가 70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친구들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어, 우리 아빠도 그래!"라는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한 친구는 아버지가 병원에서 노화성 난청 진단을 받았다며, 함께 병원 예약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노화성 난청이란 무엇인가
많은 분들이 '노인성 난청'이라고 부르는데, 정확한 의학 용어는 '노화성 난청(presbycusis)'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청각 기관이 자연스럽게 퇴행하여 소리를 듣거나 말을 분별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청각을 담당하는 달팽이관(cochlea)에는 유모세포와 청신경이 분포해 있는데, 나이가 들수록 이 부분들이 노화됩니다. 유모세포란 소리의 진동을 전기 신호로 바꿔주는 세포로, 한번 손상되면 재생되지 않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노화성 난청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진적으로 악화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노화성 난청은 모든 소리를 균등하게 차단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고주파수 영역부터 청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우리말의 자음(ㄱ, ㄷ, ㅅ 등)이 바로 이 고주파 영역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소리 자체는 들려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연구에 따르면 60대에서는 20~30%, 70·80대에서는 최대 50%가 일상 대화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노화성 난청을 경험합니다. (출처: 대한이비인후과학회)
단순 노화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나이 들면 다 그런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청력 저하가 모두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만은 아닙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께서 여러 가지 청력 검사를 진행하셨습니다.
① 순음청력검사 — 얼마나 작은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지 측정하는 음 감지 능력 검사
② 어음 판별력 검사 —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듣는 능력 평가. 이 능력이 떨어지면 보청기를 착용해도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다행히 아버지는 보청기를 낄 정도는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강조하신 부분이 있었습니다. 노화성 난청 외에도 귀지(이구) 축적, 중이염 같은 귀 질환, 심지어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혈관 질환도 청력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귀 안쪽의 미세 혈관에 혈액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청각세포가 손상될 수 있습니다. (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한쪽 귀만 갑자기 안 들리거나, 귀에서 소리가 울리는 이명 증상이 동반된다면 반드시 이비인후과 진료를 받으세요.
예방과 관리, 어떻게 해야 할까
노화성 난청 자체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악화 속도를 늦추거나 추가 손상을 막는 방법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가장 중요한 예방법은 소음 노출을 줄이는 것입니다. TV 볼륨을 가능한 한 적정 수준으로 낮춰서 듣는 연습을 하는 게 좋습니다. 소음이 많은 작업 환경에서는 귀마개나 귀덮개를 착용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소음성 난청은 노화성 난청을 가속화시키는 주요 위험 요인입니다.
기저 질환 관리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같은 혈관 질환은 귀 안쪽의 미세 혈관 건강에 악영향을 줍니다. 이런 만성 질환이 있다면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청력 보호에도 도움이 됩니다.
가족 중 어르신이 계신다면, 다음 신호를 주의 깊게 관찰해 보세요.
✔ TV 볼륨이 예전보다 눈에 띄게 커졌는지
✔ 대화 중 같은 말을 자주 되묻는지
✔ 전화 통화를 어려워하거나 피하려는 경향이 있는지
✔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대화 참여를 꺼리는지
청력 저하는 단순히 소리를 못 듣는 문제를 넘어 사회적 고립, 인지 기능 저하, 우울증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난청이 있는 노인의 경우 치매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부모님의 청력 변화를 "나이 들면 다 그런 거지"라고 가볍게 넘기지 말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필요하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고: 대한이비인후과학회 / 국민건강보험공단 / 참고 영상 링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