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부모님이 같은 질문을 하루에 두세 번씩 하시는 걸 보면서 속으로 걱정이 커졌습니다. 괜히 예민한 건가 싶다가도, 제 할머니가 작년에 치매 진단을 받으신 일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건강검진에서 "치매 초기는 아니지만 예방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으신 뒤로는 더욱 신경이 쓰였습니다. 저 역시 아이 셋을 키우면서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고 약속을 깜빡하는 일이 많았기에, 모든 깜빡임이 곧 치매는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건망증과 치매 초기 증상을 구분하는 기준을 직접 찾아봤고, 제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관찰법을 정리해봤습니다.
정상 건망증과 치매 초기, 어떻게 다를까요
나이가 들면 누구나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전화번호를 외우던 시절과 달리, 요즘은 핸드폰에 이름만 검색하면 되니 외울 필요를 못 느끼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도 출산 후 산후건망증을 겪으면서 열쇠를 냉장고에 넣어둔 적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 한동안은 방금 하려던 말도 잊어버리고, 마트에서 뭘 사러 왔는지 떠오르지 않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시부모님의 건망증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건망증과 인지 저하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구분 기준은 '힌트를 주면 기억해내는가'입니다. 경도인지장애(MCI, Mild Cognitive Impairment)란 정상 노화와 치매 사이의 중간 단계로, 기억력 저하가 있지만 일상생활은 유지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정상 건망증은 "지난주에 누구 만났지?"라는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해도, "공원에서 산책한 분"이라고 힌트를 주면 "아, 김 선생님!"하고 떠올립니다. 반면 치매 초기에는 힌트를 줘도 그 기억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히 느린 것과 아예 저장되지 않은 것의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 시아버님은 원래 기억력이 정말 좋으신 분이셨습니다. 손주들 생일은 물론 친척들 경조사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셨죠. 그런데 요즘 들어 방금 나눈 대화를 다시 물어보시는 일이 생겼습니다. 처음엔 '나이 드셔서 그러시겠지'라고 넘겼는데, 같은 질문을 30분 간격으로 반복하시는 걸 보고 본격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질문을 하셨다는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신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반복의 빈도와 간격도 중요한 신호입니다. 하루에 한두 번 같은 질문을 하는 것과, 짧은 시간 안에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은 다릅니다. 일상 기능의 유지 여부도 핵심 기준입니다. 약 복용, 공과금 납부, 약속 시간 지키기, 간단한 요리 같은 일상적인 활동이 유지된다면 급격한 인지 저하는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평소 능숙하게 하던 일에서 실수가 잦아졌다면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직접 관찰하면서 만든 체크리스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같은 질문을 30분~1시간 간격으로 반복하는가, 힌트를 줘도 기억을 못하는 경우가 주 2회 이상인가, 평소 잘하던 일에서 실수가 늘었는가, 익숙한 장소에서 길을 헷갈린 적이 있는가, 성격이 갑자기 예민해지거나 의심이 많아졌는가. 이 중 2~3가지가 한 달 이상 지속된다면 신경과 상담을 고려해볼 시점입니다. 이런 신호들은 함께 사는 가족이 가장 먼저 알아챌 수 있고, 조기 발견이 이루어질수록 이후 진행 속도를 늦출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보건복지부 자료는 설명합니다.
치매 예방,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
제 할머니는 1932년생이신데 작년에 치매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본인의 자식들은 알아보시는데 저희 같은 손주는 못 알아보시더군요. 제 남편조차 모르실 때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워낙 말씀이 없으셨던 분이라 초기 증상을 놓친 게 아닌가 싶어 후회가 컸습니다. 가족 중에 치매를 겪는 분이 계시면 자연스럽게 다른 가족들도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게 꼭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부모님께는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로 했습니다. "치매 검사 받아보세요"라는 직접적인 말 대신 "요즘 건강검진에 기억력 검사도 간단하게 할 수 있다더라"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제안했습니다. 부모님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검사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어렵고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예방법도 많습니다. 예전에는 전화번호를 몇 개씩 외우고 다녔지만 요즘은 그럴 필요를 못 느낍니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암기 활동이 뇌를 자극합니다. 저는 시부모님께 손주들 전화번호를 외워보시라고 권했습니다. 메모도 좋지만, 스스로 외우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억력 검사를 가장한 대화도 효과적입니다. "오늘 아침에 뭐 드셨어요?" 같은 간단한 질문부터 "지난주 토요일에 누구 만났어요?"처럼 조금 더 먼 기억을 묻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인지 상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도 대화라고 생각하시니 부담 없이 응해주셨습니다.
올해 명절에 할머니와 여행을 함께 갔는데, 할머니가 정말 좋아하셨습니다. 작년에는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시고 혼자 있고 싶어 하셨는데, 이번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좋다"고 하시더군요. 대한치매학회 연구에 따르면 규칙적인 사회 활동과 가족과의 교류가 치매 예방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혼자 있는 시간보다 사람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을수록 인지 기능 저하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짧은 순간이라도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여행에서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더 자주 찾아뵙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부모가 자주 깜빡하기 시작하면 자녀의 마음은 복잡합니다. 괜히 의심하는 것 같아 미안하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불안합니다. 제 경험상 이럴 때 필요한 건 '확정 진단'이 아니라 '차분한 준비'였습니다. 기억 변화를 기록하고, 병원 상담을 자연스럽게 제안하고, 일상 속 작은 자극을 늘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작이 됩니다. 치매는 무서운 병이지만, 조기에 발견하고 대응하면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습니다. 막연한 걱정 대신 구체적인 관찰과 기록으로, 부모님과 우리 자신을 위한 준비를 오늘부터 시작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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